‘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영화 추천 리스트 10. (2024)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영화 추천 리스트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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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영화 추천 리스트 10.

평논 2020. 12. 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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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슨, 에드가 라이트, PTA 등이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영화에 투영시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상대적으로 잔잔하고 고요한 분위기의 영화에 깊은 여운의 감동을 가미하여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다. 고로 영화를 본 직후의 감정에 의존하여 영화를 판단하는 내게 있어 클린트 이스트우드만큼 취향 저격인 감독이 따로 없다. 그렇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필모그래피를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니, 이 양반이 보통 양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배우와 감독으로서 그 정점에 오른 유일무이한 인물이자 연출, 각본, 연기, 작곡에 모두 능통한 다재다능한 인물.'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50년대 TV 드라마의 단역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해 60년대부터 세르조 레오네 감독과 함께 <달러 3부작>을 모두 성공시키며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대표적인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후, 영화감독으로 데뷔해 다수의 오스카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그 재능과 역량을 모두 입증한 사람이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 2020년 현재,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활발히 영화 활동을 하고 있으니 영화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과연 존경하지 않으려야 존경할 수밖에 없는 영화인이다.

이렇게 '거장'으로서 수십 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수십 편의 영화에 출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번 글에선 그의 수십 편의 영화들 중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작품 10편을 꼽아 소개해보려고 한다. 익숙한 영화부터 생소한 영화, 의외인 영화까지. 백전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세상 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 1992

상술하였다시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세르조 레오네 감독과 함께한 <달러 3부작>을 연달아 성공시키면서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에 대한 멸시와 무시를 이겨내고 '웨스턴' 장르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바 있다. 그런 그가 영화감독으로서 입지를 다진 후 만든 영화가 또 다른 웨스턴 장르물인 <용서받지 못한 자>라니. 금의환향도 이런 금의환향이 없을 것이다.

다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형적인 웨스턴 장르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차용하기보단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출하기 위해 영화를 진행시키면서 공식의 방향을 조금씩 뒤틀었다. 일단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주인공 '윌리엄 머니'부터 실력이 빛바랜 '잊힌 전설'이니, 일반적인 서부극 영화를 기대하였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웨스턴 장르에서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와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이야긴 달라진다. 제목부터 살펴보자. '용서받지 못한 자'라니. 혹자는 1960년에 개봉한 동명의 서부극을 거론하며 해당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가 하겠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용서받지 못한 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을 투영한 듯한 영화의 주인공, 윌리엄 머니와 그의 친구 '네드'를 겨냥하고 있는 말이다. 이들은 살아있는 것들은 모조리 죽였던, 끔찍한 과거를 치욕스럽게 여기며 살인을 했던 당시의 기억과 죄책감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는 인물들이다. 살인에 진절머리가 난 이들은 결국 목표를 눈앞에 두고 살인하기를 망설이기에 이른다. 즉,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 제목을 통해 피 묻은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윌리엄과 네드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며 과거의 살인에 절여진 총잡이들을 애탄하고 한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 것인지 확실히 하고자 한다. 주인공 일행과 동행하는 젊은 총잡이, '키드'는 살인을 경험한 뒤 윌리엄에게 "당신과 같아지긴 싫다."라고 하며 이들의 과거가 어떤 식으로든 용서될 수 없음을 확고히 하기도 한다. 또한 진 핵크먼이 연기한 '리틀 빌'은 현상금을 쫓아다니는 총잡이들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웨스턴 장르에 등장하는 총잡이들의 실상을 하나하나 나열하는데, 리처드 해리슨이 분한 '잉글리쉬 밥'은 리틀 빌이 경멸하는 총잡이들의 한심함을 그대로 답습하며 총잡이들의 허세와 자만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웨스턴 장르 속 변화무쌍한 총잡이를 연기하여 최고의 위치에 오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위 문단에서는 영화가 자칫 재미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언급하였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모건 프리먼, 진 핵크맨, 리처드 해리슨 등 당대의 명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이고 장르가 장르인 만큼 탁월한 재미를 함유하고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30여 년 전에 제작된 영화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자. 긴 세월 동안 이어져온 영화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은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 주제가 모두 수준급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이다.

웬만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직접 작곡한 '클라우디아 테마'는 꼭 들어보길 바란다. 가능하면 영화를 보며 '클라우디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하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1995

동명의 매우 유명한 소설을 클린트 이스트우드 식으로 풀어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명작이다. 매번 총으로 사람을 날려버리거나 사람을 면전에 두고 입에 담지도 못할 험한 말을 하거나, 고지식하고 고집불통인 역할을 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미중년의 모습을 하고 로맨틱한 남자, '로버트'를 연기했다는 것이 아마 이 영화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큰 화두가 아닐까 생각한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남편과 두 아이가 잠시 집을 비우고,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프란체스카'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프란체스카가 우연히 로버트를 만나게 되고,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려 매료된 두 남녀가 외도를 하면서 시작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선을 넘을 듯 넘지 않을 듯 눈치를 보던 이들은 결국 선을 완전히 넘어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고, 이들이 운명 같은 사랑임을 확인한다. 하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질일까. 프란체스카는 이미 가정이 있었고 가족과 사랑 앞에서 미친 듯이 고민하게 된다. 메릴 스트립의 섬세하고도 절제된 감정 연기와 풍부한 역량은 관객들이 프란체스카에게 동화되게 만들어 관객들에게도 끊임없이 되묻는다. 이것은 명백한 불륜인 것인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영화와 배우가 펼치는 포옹력과 장악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미친 듯이 빠져들게 되고, 후반부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장면에서는 보는 입장에서 프란체스카가 된 것 마냥 선택의 기로 속에서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에 대한 감정 이입은 영화가 끝난 뒤 한참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 여운으로 이어진다. 비극적인 운명의 사랑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 꼭 두 눈으로 확인하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인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참으로 아쉬운 걸작이다.

<미스틱 리버>

Mystic River, 2003

<미스틱 리버>는 개인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영화이다. 숀 펜, 팀 로빈스, 케빈 베이컨으로 이루어진 주연진의 완벽한 연기와 이에 상응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력, 흥미진진한 스토리로부터 비롯된 엄청난 재미까지. 고루 삼박자를 모두 갖춘 영화가 바로 <미스틱 리버>이다. 이 영화로부터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 필자는 종종 인생 영화를 묻는 질문에 이 영화를 언급하기도 한다. 때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영화를 감상해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미스틱 리버>의 주요 키워드는 PTSD이다. PTSD는 후술할 여러 영화들의 중심 소재가 되는 키워드이기도 한데, 팀 로빈스가 분한 '데이브'는 어린 시절 감금 및 성폭행으로부터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성인이 된 이후까지 고통받고 있다. 그런 그가 한 밤중 피가 잔뜩 묻은 채로 집에 돌아오게 되고, 같은 날 밤에 데이브의 친구 '지미'의 딸이 죽는 참사가 일어나게 되면서 영화는 그 시작을 알린다. 하룻밤 만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데이브와 지미의 또 다른 친구이자 형사 '숀'이 담당하게 되면서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이 셋은 되돌릴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사건이 미궁으로 빠질수록 이들의 관계에는 서서히 금이 가게 되고,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이들의 결말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곳으로 치닫는다.

이 영화가 흥미진진한 재미를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관객들과 등장인물들의 시야를 동일선상에 두기 때문이다. 세 주인공의 사정을 모두 알 수 있어도 사건의 진실까지 알 순 없기 때문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이입하고 생각에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영화의 후반부에 터지는 하이라이트에서 주인공들이 받는 충격이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이되는 것이고. 과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력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팀 로빈스의 소름 돋는 연기가 눈에 띄었다. PTSD에 시달리는 불안한 심리와 예민한 감정선은 그의 아내가 그를 의심하게 만들고 관객들이 그를 의심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충격적인 결말에 지대한 공을 세운 셈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 2005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단연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다루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그의 대표작이다. 아마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이라는 훌륭한 실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스트우드 영화 중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양상, 즉 덤덤하고도 담백하지만 끝날지 모르는 깊은 여운의 감동이 아주 잘 드러난 작품이기에 더 그러지 않나 생각해 본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훌륭한 컷 맨(복싱 선수의 상처를 응급처치하고 지혈해 주는 사람) 이자 코치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러 막말을 일삼아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된 프랭키, 그리고 웨이트리스로서 손님이 버린 음식을 먹을 정도로 찢어질 듯 가난하지만 그 누구보다 복싱에 대한 열정이 넘쳐나는 매기. 선수를 코치하는 데 있어 트라우마가 있는 프랭키는 막무가내인 매기가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배척하지만, 결국 그녀의 열정에 승복하고 그녀를 최고의 복서로 키우기 시작한다.

언뜻 보면, 이 두 인물이 복싱 선수와 코치로 만나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갈등을 해소하며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아주 전형적인 영화로 보인다. 실제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이 전형적인 플롯을 중후반부까지 그대로 따라가는데, 프랭키의 가르침을 받은 매기가 최고의 복서로 성장하여 연전연승을 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하이라이트인 후반부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영화는 노선을 급선회하여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들어간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을 배려하여 그 반전의 내막을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정말 충격적인 반전에 어안이 벙벙해질 것이라 장담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 급선회의 종착역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밀려오는 깊은 여운의 감동과 슬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의 유통기한은 영화를 본 직후에 한정되지 않고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에 갇힌 것 마냥 길고 진하게 계속된다.

개인적으로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아주 잘 만든 휴먼 드라마이자 신파 영화라고 생각한다. 몇몇 사람들은 여러 한국 영화들의 억지스러운 신파 때문인지 '신파'라는 단어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애석하게도 신파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영화의 스토리와 주제, 감정선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억지로 끼어 맞추어 넣는 '억지 신파'가 진정한 문제인 것이지.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좋은 신파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영화이다. 만약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면 부디 프랭키와 매기의 관계성과 프랭키가 매기에게 지어준 링네임, '모쿠슈라'가 어떤 의미인지 꼼꼼히 살펴보면서 영화를 감상하길 바란다.

<아버지의 깃발>

Flags Of Our Fathers, 2006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전쟁 영화는?'이라는 질문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을 질문의 답으로 꼽곤 한다. 하지만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개인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버지의 깃발>을 답으로 꼽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소개하기 때문에 급작스럽게 포장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깃발>은 <미스틱 리버>와 함께 개인적인 '인생 영화'로 뽑을 정도로 필자에게 있어 중요한 영화이다.

<아버지의 깃발>이 특별한 이유로 '유명한 전쟁 영화들도 자세히 다루지 않았던 전쟁의 또 다른 민낯을 조명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곤 하는데, <아버지의 깃발>은 한순간에 사람이 죽기도 하는 전쟁의 참혹함을 나타내는데 그치지 않고 전쟁 이후 살아돌아온 영웅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과 극심한 PTSD에 시달리는 것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전쟁으로부터의 끔찍한 기억이 살아돌아온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롭힌다는 사실을 공고히 한다.

이 영화가 준 여운이 필자에게 아직까지도 유효한 까닭은 참전 용사이고, '이오지마의 깃발'을 계양하였으며,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영웅들이지만 이들이 결국 비참하고 비루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사실과 이미지에만 집착한 사람들과 그것을 이용해 먹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전쟁터를 놀이터처럼 생각한 청년들이 참혹한 전장에서 사색이 되어 서로 죽이고 죽어가는 모습 또한 뇌리에 크게 남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 또한 빛을 발한 작품인데, 전투 장면들을 회상 장면으로 처리하여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연출은 이후 후술할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창의적인 연출이 되겠다.

색다른 매력과 감동, 충격의 전쟁 영화를 마주하고 싶다면 <아버지의 깃발>을 한 번 보는 것을 추천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추구하는 차분하고도 덤덤한 감동에 드라마틱 한 실화가 접목되었을 때, 어떤 시너지가 일어나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보길 바란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2006

<아버지의 깃발>을 준비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오지마 전투'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일본군 측의 지휘관 '쿠리바야시 타다미치'가 집으로 보낸 편지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오지마 전투를 일본군의 시선에서 풀어나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아버지의 깃발>의 자매작임에도 불구하고 완성도에 있어서 본편의 가치를 뛰어넘은, 괴물 같은 작품이다.

혹시 몰라 언급하지만, 이 영화가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이자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세계를 전황의 불구덩이 속으로 집어넣은 일본 제국을 미화하는 영화로 착각되지 않길 원한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오히려 일본의 군국주의가 개인에게 어떤 피해를 입히는지, 제국주의에서 파생된 전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끔찍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지 주목한다. 또한 일개 병사인 사이고가 유능한 지휘관 쿠리바야시를 만나고, 참혹한 전쟁터를 마주하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습도 그려내며 추축국의 병사이지만 결국 이들도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들이며 마찬가지로 전쟁의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깃발>을 편애하기는 하지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완성도를 그냥 지나칠 순 없을 것 같다. 먼저, 와타나베 켄이 백혈병을 완치한 후 활활 타오르는 열정과 함께 연기한 쿠리바야시 중장은 켄의 아우라 넘치는 연기력을 뒷받침 삼아 섬의 일본군 병사들과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을 홀리듯이 사로잡는다. 인자한 성품의 상관으로서의 역할과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는 군인으로서의 역할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쿠리바야시의 모습이 사이고뿐만 아니라 관객들까지 그에게 동화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앞뒤가 다른 기회주의자, 군국주의에 세뇌된 상관, 전쟁에 참여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각기 다른 군상의 등장인물들은 영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관객들의 뇌리에 박혀 깊은 여운의 감동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한편, 클린트 이스트우드답게 음악 선정이 매우 탁월하다. 그해 개최된 오스카에서 음향편집상을 수상하였을 정도로 퀄리티 있는 음악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에 아주 큰 한몫을 담당한다.

이외에도 각본, 연출,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내면 갈등, 감격스러운 엔딩 등 영화에서 좋았던 점이 가득한데, 모두 말하자면 끝도 없을 듯하니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는 사실은 이미 상술한 내용으로 설명이 되었을 것이니. 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보게 된다면 동일선상 위에 있는 자매작 <아버지의 깃발>도 꼭 보길 바란다. 순서는 <아버지의 깃발>을 먼저 하는 것을 추천한다. 연결되는 장면들이나 뒤풀이되는 장면들이 많으니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체인질링>

Changeling, 2008

1920년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와인빌 양계장 사건'은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릴 정도로 잔혹했던 사건의 전말로도 매우 유명하지만 사건을 둘러싼 황당무계한 해프닝들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실화를 사건의 당사자 중 하나인 '크리스틴 콜린스'의 눈으로 바라보며 제작하였는데, 이스트우드의 철두철미한 연출과 크리스틴 콜린스 역으로 분한 안젤리나 졸리의 열연이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켜 한 편의 수작을 뚝딱, 만들어내었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졸리는 당시 <툼 레이더> 시리즈와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원티드>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할리우드의 간판스타로 급부상하던 중이었는데, 그러던 와중 이스트우드의 정극이자 졸리 입장에선 원 맨 쇼나 다름없었던 <체인질링>을 완벽하게 소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열연을 펼쳐 다소 한정되어 보인 필모그래피를 개선하고 그녀를 둘러싼 연기력 논란을 단번에 타파할 수 있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실화를 각색하여 재미있게 엮은 뒤에 영화적인 재미를 추가하고 이를 완벽하게 살려내는데 아주 노련하다.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난 것처럼 <체인질링> 또한 실화의 전후 사정을 모두 알고 감상하여도 전혀 이상이 없을 정도로 새롭고 신선한 재미가 가득하다. 사실, '이스트우드와 졸리의 합'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하다. 이들의 합이 보는 이를 어떻게 영화 속으로 빨아드리는지, 영화를 보면서 확인해보자.

<그랜 토리노>

Gran Torino, 2008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분한 '월트'는 현재 굉장히 신경이 날카롭다. 때문인즉슨 무뚝뚝한 그가 찬사를 내릴 만큼 아름다웠던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주변에 남은 이라곤 강아지 데이지밖에 없는 탓인데. 그의 유일한 혈육인 아들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월터의 재산에만 관심이 있을 뿐 혼자 남게 된 월터에겐 눈곱만큼의 시선도 주지 않는다. 월터는 가족이라는 형식적인 틀에만 의존한 채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작자들에게 마찬가지로 눈곱만큼의 눈길도 주지 않으며 자신의 집에서 맥주와 데이지, 그랜 토리노 한 대와 함께 살아간다. 허나,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들은 집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의 이웃집은 물론 마을 전체에 모여들고 있는 몽족들과 그들의 생활 방식은 그의 주된 스트레스들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옆집 소년 '타오'가 깡패들의 협박에 못 이겨 월터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려고 한 사건과 월터가 깡패들의 손에서 타오를 구하고 마찬가지로 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옆집 소녀 수를 구한 해프닝 이후로 월터의 빈자리엔 전혀 예상치 못한 이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다. 한국 전쟁 참전 당시, 한 소년과의 일로 아직까지 괴로워하던 월터는 타오로 인해 그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게 되고, 타오와 그의 가족들과 함께하면서 느낄 수 없었던 '가족'으로서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타오와 수를 괴롭히던 깡패들의 패악질은 날이 가면 갈 수 록 심해지게 되고 타오 가족의 안위를 위해 월터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기다란 장총을 들고 으르렁거리는 예고편 속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장총들 들고 늠름하게 서있는 모습의 포스터를 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아이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액션 영화로 돌아오나 보다 하고 큰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가 막상 <그랜 토리노>를 보았을 때 실망 아닌 실망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필자 또한 포스터를 보고 난 후 감상한 영화에 아쉬움 아닌 아쉬움이 길게 남았었는데. 하지만 이런 아쉬움과 실망을 상쇄하다 못해 주객전도해버리는 영화의 완성도와 감동은 다시 한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관으로 빠져버리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이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표 휴먼 드라마, <그랜 토리노>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American Sniper, 2014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여 '전설의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크리스 카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각색하여 만든 전기 영화이다. 완벽한 고증 덕분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많은 밀리터리 덕후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로 잘 알려져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는 이 영화가 단순히 크리스 카일의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이라크 전쟁 속 그의 활약상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인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자.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훨씬 진중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전하려고 하고 있다.

<아버지의 깃발>이 전쟁 후 귀환한 영웅들의 PTSD를 집중적으로 다뤘고 이 사실이 필자에게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것을 앞서 밝힌 바 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역시 참혹한 전쟁에 참여한 크리스 카일이 수차례의 전투와 살상을 거치면서 PTSD에 시달리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조명하여 전쟁이 한 인간의 내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다. 그뿐 만이 아니다. 전쟁 중 마주하는 동료의 죽음, 아무런 잘못 없는 민간인들의 죽음, 새파랗게 어린아이가 전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참혹함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전쟁의 답습이 어떤 아픔을 초래하는지 다룬다. 다른 전쟁 영화들에 비해 현재와 그리 멀지 않은 시간대의 일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기에 영화가 다루는 아픔과 아이러니함이 더욱 와닿는 것도 있는 듯하다.

'저격수'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다른 영화들과 차별되는 고유의 재미를 전달한다. 한 아이를 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로에 서있는 장면,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하는 장면, 자신의 실수로 동료들이 죽음에 처하는 장면들은 이제껏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기에 신선했고 완벽한 고증과 실제 경험담이 가미되었기 때문에 참신했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SULLY, 2016

은퇴를 앞둔 노련한 기장 '설리'는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있었을 비행을 평소대로 준비하고 그의 비행기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줄을 이어 차례차례 탑승한다. 베테랑 설리는 순조롭게 비행기를 이륙시키고, 그날도 어느 때처럼 평범하기 그지없을 하루들 중 하나가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설리는 이륙한지 단 몇 분 만에 양쪽의 두 엔진을 모두 잃게 되는, 간두지세의 상황에 내몰리게 되고,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설리는 그저 감에 의지한 판단하에 비행기를 허드슨강에 착륙시키겠다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감행하게 된다. 조금이라도 수가 뒤틀리게 되면 자신을 포함한 탑승객 모두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상황. 설리는 수 십 년간 쌓아온 내공을 통해 기적적으로 비행기를 강 위에 불시착시키는 막대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게 된다. 그의 성공은 그를 포함, 탑승객 전원 생존이라는 결과를 불러오고, 설리는 단숨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된다.

하지만 영화가 조명하는 주인공 설리는 그를 영웅으로 숭배하는 언론과 사람들을 영 달가워하지 않는다. '영웅'으로서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곳에 이끌려 다녀야 했던 그는 가족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며 지쳐가고, 설상가상 사고 당시 설리가 조종했던 비행기의 엔진이 정상 가동되었을지도 모르다는 사실과 충분히 다른 공항으로 우회할 수 있었다는 보험사의 압박이 가해지자 심히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갈고닦은 내공에 의한 판단이었으므로 설리는 그에 대한 의문을 전면 부인하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판단이 맞았는지 갈등하게 되고, 괜스레 승객들을 위험으로 내몬 것은 아닌가 자책한다. 그리고 이런 복합적인 설리의 감정과 정신 상태는 톰 행크스의 섬세한 내면 연기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수준 높은 연출로 관객들로 하여금 아주 잘 느낄 수 있도록 풍부하게 표현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2009년 발생한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사고'를 영화로 재현한다고 하였을 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사건의 '기적적인 결과'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만들 거라 생각한 사람은 몇 없을 거라고 간주된다. 역시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사건의 표면적인 부분보단 사건의 당사자인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 기장의 내면과 사건 이후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어 기적 뒤에 자리하고 있던 그림자를 들추어낸다. 그리고 여기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연출적인 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는데, 설리 기장과 그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고 그와 신경전을 벌이는 사람들 간의 해프닝을 주요 소재로 삼으면서 그날의 기적을 플래시백으로 적재적소에 끼어 넣어 지루할 틈을 만들어 놓지 않는 그의 스토리 전재 방식과 연출을 과연 타의 추종을 일으킬 만큼 놀랍다. 톰 행크스와 이스트우드의 협업을 두 눈으로 감상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며 그의 필모를 탐구해보고픈 사람들에게도 1순위로 추천해 주고 싶은 작품이다.

이렇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10편을 알아보았다. 만약 이 글을 통해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처음 접해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에 관심이 생겼다면 필자에게 이보다 더한 선물은 없을 것 같다.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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